문화원 프로그램

KOREAN CULTURAL CENTER

  • 문화원 프로그램
  • 전시

경계협상

2023.09.29. | 404 Hit

주캐나다한국문화원(원장 이성은, 이하 문화원)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원장 정길화, 이하 KOFICE), 리얼디엠지프로젝트(감독 김선정, 이하 RDP), SAW Centre (대표 Tam-Ca Vo-Van, 이하 SAW)와의 협력을 통해 캐나다 수도 오타와의 문화원 전시실과 SAW갤러리에서 10월13일부터 내년 1월27일까지 한-캐 수교 60주년 기념 트레블링 코리안 아츠 <경계협상-오타와> 전시를 개최한다. 


2023년은 한국과 캐나다가 수교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깊은 해이다. 이러한 뜻깊은 해에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현상을 동시대 예술의 시각으로 고민하는 <경계협상-오타와> 전시를 캐나다의 수도에서 현지의 주요한 현대미술관인 SAW Centre와의 협력으로 공동주최 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캐나다가 1950년 한국전 최초 참전국이었고 현재도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국과 현대사를 같이 하고 있는 최우방국이라는 사회,역사적 연대감을 바탕으로하여, 지난 십여년 간 그 열기를 더하고 있는 캐나다인들의 K-Culture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이제는 DMZ라는 한국적이고도 범세계적 이슈로까지 그 화두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건립 이래 올해로 개원 50주년을 맞는 SAW Centre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예술가 직접 운영 기관(artist-run-centre)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성 있는 공연 및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주로 다루어 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많은 예술가들이 SAW에서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곤 하였다. 현재 매년 3만여 명의 방문객들이 찾고 있는 SAW는 오타와-가티누 지역의 주요 문화기관으로서 주 전시장 이외에 원주민 현대미술 전시공간인 노르딕 랩(Nordic Lab), Club SAW, 야외무대 Court Yard, 그리고 오타와시 및 캐나다 수도권위원회 (National Capital Commission)와 함께하는 Rochon 작가레지던시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DMZ를 둘러 싼 관심과 논의들을 불러 일으킬 다양한 부대행사들도 마련된다. 10월13일(금) SAW Centre에서 있을 개막식 행사에는 캐나다 젊은이들의 DMZ 행사 참여를 환영하는 K-Pop 커버댄스 공연이 SAW의 전천후 실험예술 공간인 Club SAW에서 개최되고, 10월14일(토)에는 문화원 전시 개막식과 패널토론, 그리고 영상상영이 있다. 본 패널토론에는   전시의 기획을 맡은 김선정 예술감독과 윤진미, 아드리안 괼너, 혜안폴권카젠더 등의 전시작가들이 참여한다. 패널토론에 이어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2017년 베를린 영화제 상영작 <전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상영될 예정이다.  





경계협상-오타와, 2023


경계와 화합을 위한 노력들


김선정 

REAL DMZ PROJECT 예술감독 


올해는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1953년의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으로 멈추고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가 만들어진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DMZ는 군인들만이 주둔하는 장소로서 역설적으로 가장 무장화된 무장지대가 되었다. 현재 DMZ에는 민간인 통제로 인해 군인을 제외하고는 동물과 식물만이 남아 있다. 《경계협상》은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진 여러 가지 현상을 동시대 예술의 시각으로 고민하는 전시다. 본 전시는 DMZ의 장소성과 역사, 분단의 의미를 환기하는 한편 미래의 DMZ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다양한 시선으로 DMZ에 접근하는데, 정치적, 역사적 내용부터 70년간 DMZ 주변에 형성된 민간인 통제구역 주민들의 삶이나 분단에서 비롯된 여러 현상까지 살펴본다. 나아가 작가들은 70년의 분단에서 비롯된 DMZ의 자연환경과 생태를 새롭게 탐구하고자 시도한다.


DMZ

남과 북의 경계인 DMZ는 70년 전인 1953년의 정전협정으로 만들어졌다. 1945년 12월에 열린 미국・영국・소련 3국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일정 기간 신탁 통치하는 문제에 관해 협의한 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나눈다. 남은 미군의 군정하에, 북은 소련의 군정하에서 통일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남한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북한은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1950년에 북의 공격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유엔과 북한, 중국 대표 간의 정전협정으로 휴전이 선포되었다. 한국전쟁이 종전(終戰) 아닌 정전(停戰)으로 마무리되고, 육상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양국의 군대를 후퇴시키기로 약속하면서 총길이 248km에 달하는 DMZ가 만들어진다. DMZ의 남쪽 경계가 남방한계선(Southern Limit Line, SLL)이고 북쪽 경계가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이다. 그리고 남방한계선에서 5-20km 떨어져 민간인출입통제구역(Civilian Control Zone, CCZ)이 형성된다. 국제법상의 제도인 DMZ는 비무장화, 일정한 완충 공간의 존재, 군사력의 분리 또는 격리 배치, 감시기구 설치 등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의 DMZ와 그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지역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일시적 정전과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까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경계협상

<경계협상>은 ‘리얼디엠지프로젝트(REAL DMZ PROJECT)’에서 시작되었다. 리얼디엠지프로젝트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과 분단의 사회적 영향 그리고 분단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다루는 프로젝트로 2012년 철원에서 시작되었다. 리얼디엠지프로젝트는 철원의 안보 관광 코스와 양지리 마을을 중심으로 전시와 커미셔닝 작업을 2012년에서 2016년까지 진행하였고2019년 문화역서울 284에서 이제까지의 전시를 망라하는 대규모전시가 열렸다. 이후 덴마크, 브라질,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독일 등 해외에서도 전시가 이어졌다. 2023년 9월 1일부터 23일까지는 <DMZ 전시: 체크포인트>가 경기도 파주에서 관측소(Observation Post, OP)로 사용되었던 도라전망대와 미군기지로 사용되었던 캠프 그리브스에서 진행되었다. 2023년 10월 13일부터 2024년 1월 27일까지 오타와의 주 캐나다 한국문화원과 SAW 갤러리에서 <경계협상-오타와> 전시가 열린다. 두 전시장은 남과 북이 70년의 세월 동안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해왔듯이 DMZ의 여러 다른 모습을 마주 보듯이 구성된다. SAW 갤러리에서는 남과 북의 관계와 분단 상황과 분단에 처한 사람들을 조명한 작업과 철원 양지리 마을을 중심으로 민간인 통제구역 주민의 삶을 보여 준다. 캐나다 한국문화원에서는 70년간 사람들이 들어 갈 수 없는 디엠지 지역의 자연과 화합을 다룬 작품들을 전시한다. 


SAW 갤러리

SAW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오면 붉은빛의 라이트 박스 안에 36장의 흑백 사진을 담은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의 〈구멍 | 유령 | 균열〉(2016)을 마주하게 된다. 이 흑백 사진들은 1951년 덴마크의 저널리스트인 케이트 플레론(Kate Fleron)이 국제민주여성연대(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과 2015년 입양아인 카이젠이 ‘국제여성평화걷기’라는 30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국제 여성 사절단에 참여해 북에서 남으로 국경을 넘어간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다. 혜안폴권카젠더의 〈Leave Without Absence〉(2023)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다. 혜안폴권카젠더는 주택가에서 수집한 70, 80년대의 방범창이나 판문점의 하수구 커버(Grate) 등을 캐스팅하거나 옻칠하는 작업을 한다. 하수구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생활에서 쓰고 버리는 더러운 물을 배출하고 순환하는 사회의 기반 시설(infrastructure)이다. 그리드나 기하학적 무늬로 이루어진 방범창은 집 안과 밖을 구분하고 밖의 위험으로부터 안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임민욱의 <내가 지은 이름이에요>는 한국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례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작업이다. 최찬숙의 작업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마을 주민들의 삶에 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토지 개간 사업과 대북 선전을 위해 조성된 마을과 집의 구조를 가지고 작업한 〈60호〉(2020)와 마을 주민들, 특히 노년의 여성들이 사는 집마다 있는 온풍기를 촬영한 〈인공태양〉(2017)을 통해 최찬숙은 냉전 체제에서 비롯된 민간인 통제구역 안의 여성 이주자들의 삶을 돌아본다. 지비 리(Jeewi Lee)는 흑과 백의 자갈로 전시 공간을 반으로 가르는 바닥 설치와 38선 근처 나무에 남은 총알 자국을 탁본으로 뜬 드로잉을 같이 보여 준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자갈밭 속을 직접 걷게 되고 그 과정에서 흑과 백의 경계는 서서히 사라진다. 마지막으로는 윤진미의 〈물 마음(Mul Maeum)〉(2022) 작업을 만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있는 새만금 인근 어촌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훼손된 제주의 강정마을 그리고 DMZ 등의 군사 시설로 인해 사람, 자연, 환경의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난 장소 등 한국의 세 장소를 횡단하며 만든 작업이다. 아드리안 괼너(Adrian Göllner)는 철원에서 조류 전문가와 함께 철새를 관찰하고 그린 드로잉을 선보인다.


캐나다 한국문화원

캐나다 한국문화원 입구에서는 두 개의 비디오 작업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들어갈 수 없는 DMZ에 작품을 설치한다는 가정하에 만든 영상으로 이불, 임민욱, 함경아, 토비아스 레베르거, 수퍼플렉스의 작업을 가상공간에서 보여 준다. 다른 하나는 DMZ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DMZ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기록을 담은 김동세의 비디오 작업 〈남북한이 함께 만든 (만들지 않은) 구축물: 상상을 위한 비무장지대의 해체―2019〉(2019)이다. 한국문화원의 갤러리에는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2023)이 보이는데, 70년 중반에 만들어진 민간인 통제구역인 철원 정연리의 빈집을 가득 채운 식물들의 모습을 그린 작업이다. 파노라마 형식의 벽화는 사람은 사라지고 식물만이 남아 잠식한 민간인 통제구역의 모습을 반영한다. 조경진, 조혜령의 〈식물 평행세계〉(2023)는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서로 다르게 부르는 방식에 주목하여 70년간 깊어 온 남과 북의 차이를 드러낸다. 함경아는 북한 자수공들에게 도안을 보내 완성한 대형 자수 회화를 통해 북한 주민과의 금기된 소통을 시도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속 픽셀 단위로 표현한 세부 디테일은 마치 매스 게임 속의 개인처럼 보인다. 전소정은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이 여러 차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협연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남북의 음악적 대화를 선보인다. 이불의 〈오바드 V를 위한 연구(1/5 스케일)〉(2019)는 타틀린 타워와 에펠탑과 같은 모더니스트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조형물을 위한 마케트로 2018년 남북군사합의로 철거된 10개의 감시초소(Guard Post, GP)에서 가져온 잔해물로 제작되었다. 


마치며

<경계협상―오타와>는 이전의 DMZ 전시와 차이점을 두고 있다. 이전의 DMZ 전시가 분단과 DMZ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사회 현상을 보여 주는 작업을 주로 다뤘다면, 이번 전시는 10년간 리얼디엠지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장소인 철원, 특히 양지리 마을에서 진행되었던 작업들을 모아서 보여 줌으로써 DMZ의 장소성에 집중한다. 그리고 DMZ를 탐구하는 새로운 챕터로서 DMZ의 자연과 동물 및 식물에 관한 연구가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한국문화원의 전시는 가상의 DMZ 공간에 설치된 거대한 설치 작업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통해 DMZ의 미래를 꿈꾸는 작업을 시작으로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 DMZ에 남은 동물과 식물, 비인간적인 요소 등 생태 환경적 부분을 다루는 작업들 그리고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통해 DMZ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SAW전시는 DMZ의 역사 속 경계를 넘는 여성들의 시도, 그리고 10년간 철원의 양지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리얼디엠지프로젝트에서 제작된 작업과 캐나다 작가들의 작업을 같이 보여준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에서 비롯된 DMZ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는 70년간의 분단으로 같은 종의 식물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의 이름을 사용할 날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DMZ의 의미를 환기하고 그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는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 및 작품 소개 


SAW 갤러리 전시


<60호>, 2020, 단채널 HD 비디오설치, 컬러, 사운드, 24분

<인공 태양>, 단채널 영상 설치, 3:12, 풀HD, 컬러, 반복재생, 1분 30초


<60호>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토지 개간 사업과 대북 선전을 위해 북측에 배치된 112개의 DMZ 지역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에 자리잡은 선전용 마을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사적인 서사를 다룬다. 저렴한 토지와 주택을 기대하며 사람들이 대거 이주한 강원도 철원군 양지리의 집들은 ‘적’을 관찰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북쪽으로 창을 내고 형형색색 지붕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 내부는 거주자들에 의해 임시변통으로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부장적 호주제로 인해, 전쟁 혹은 일상에 산재한 지뢰로 남편을 잃은 여성 이주자들은 마을 군인들에게 숫자로 불리기 시작한다. <60호>는 그렇게 숫자가 되어버린 인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년의 여성들이 사는 집마다 있는 온풍기를 촬영한 <인공 태양> (2017)은 숫자로 불리는 여성 이주자들의 삶에 온도를 부여한다. 


<구멍 | 망령 | 균열>, 2016, 삼면화 수공예 원목 라이트 박스, 흑백 사진 36장, 52.8×508.4×10 cm


<구멍 | 망령 | 균열> 은 두 국제 여성 사절단의 눈으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을 담은 36장의 흑백 사진이 붉은색의 삼면화 라이트 박스 위에 놓인 작품이다. 1951년의 5월, 덴마크 언론인이자 여권 운동가인 케이트 플레론은 국제민주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에 의해 꾸려진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플레론은 귀국 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북한에서. 세계 종말의 인상』를 저술하였다. 이로부터 70년이 흐른 2015년 5월,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돼 자란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은 30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국제여성평화걷기’라는 국제 여성 사절단의 참가자로 북한을 방문했다. 작가는 케이트 플레론의 아카이브에서 절반의 사진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채움으로써 전쟁의 트라우마와 냉전의 양극화가 지속되었음을 가시화한다.


<내가 지은 이름이에요>, 2018, 단채널 영상, 20분 36초

<이별>, 2011, 어린이 장화, 스폰지, 파라핀, 글루, 유리 진열장, 52x67x60cm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을 찾기 위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했다. 두 강대국의 냉전체제로 야기된 남한과 북한으로의 분단은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상처를 불러왔다. 이념싸움이 지속되며 수없이 전세가 뒤집히자 생과 사가 갈리는 피난길에서 부모, 형제, 자매가 헤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138일간 진행된 방송을 통해 남한에서만 총 만여명의 가족이 재회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마주한 임민욱에게 방송국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과 역사를 되살리는 대화의 장으로 다가왔다. 임민욱의 <내가 지은 이름이에요>는 단채널 영상으로 자신의 이름도 기억을 못할 만큼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을 주로 담았다. 영상과 함께 놓인 대형 조명 오브제는 전시 공간을 가상의 방송국으로 재현하여 “불가능성”에 대한 재탐구를 시도한다.


<FRAKTUR (Fracture)>, 2018, 자갈, 가변크기

<INZISION (Incision)>, 한지, 먹, 70×140 cm (종이), 120×160 cm (프레임)


한국계 독일 작가인 지비리는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 및 활동 중이다. 작가는 비석, 나무, 기물 등에 조각된 문양 등을 먹을 사용해 원형 그대로 한지에 떠내는 동양의 전통 복사 기법인 “탁본”을 사용해 38선 근처 다섯 개의 나무의 본을 뜬 작품인 <INZISION (Incision)>을 선보였다. 작가는 남한에 5개, 북한에 5개 총 10개의 등거리 지형학 지점을 설정하여 나무의 나이 및 장소 등 자신의 기준에 맞는 나무를 선별하였다. 작가가 선정한 나무들은 모두 1945년 남북 분단 이전 다 자란 것들로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살아있는 증언으로서 자리한다. 함께 전시되는 <FRAKTUR (Fracture)>는 흑과 백의 자갈이 전시 공간을 반으로 갈라 경계를 이루며 채우는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INZISION (Incision)>을 관람하기 위해 자갈 밭을 직접 걷게 되는 경험을 한다.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의해 서서히 섞이게 되는 흑과 백의 자갈은 견고해 보이던 남과 북의 경계가 상호작용에 의해 점차 흐려지는 남과 북에 미래에 대한 작가의 희망이자 은유이다. 


<물 마음>, 2022, 단채널 영상, 30분 48초


<물 마음>은 착취 경제와 군수 산업이 사람의 생계와 생활방식, 자연, 그리고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한반도의 세 장소를 횡단한다. 이러한 장소들 중 한 곳인 새만금 근처의 어촌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있다. 33km 길이의 벽은 한때 철새들의 자연 서식지였던 하구의 갯벌을 대체했다. 두 번째 장소인 제주도의 강정 마을에는 신성한 구름비 바위를 파괴하는 해군 기지가 있는데, 여기에는 작가가 리서치 트립에서 만났던 난민 예멘 가족이 등장한다. 세 번째 장소는 북한과 남한을 나누는 비무장지대(DMZ)로, 역설적이게도 가장 높은 생물 다양성을 지닌 장소들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작업은 이러한 세 장소들을 세 개의 스크린에 교차시키며 물처럼 흘러 ‘물 마음’이라는 제목을 상기시킨다.


아드리안 괼너

<Trace>, 2023, 혼합매체, 가변크기 


<Trace>는 한국의 비무장 지대에서 마주한 새의 이미지들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각 2km씩 펼쳐진 지역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비무장 지대를 단순한 선으로 치환하는데, 이는 작가가 202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천부터 철원까지의 탐조 경로를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새들의 이미지가 그 위를 빼곡하게 채우며, 전쟁의 결과로 생성된 지역이 역설적으로 여러 동물들의 장소가 되었음을 드러낸다. 새에 주목한 작가의 지도 그리기는 군사적 맥락으로 논의되는 곳에 또 다른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다양한 제약과 삼엄한 경비로부터 벗어난다.



혜안폴권카젠더

Leave Without Absence, 2023, 

 Site-responsive installation with copper, mirrored acrylic, inkjet prints, silk, aluminum, metal sewer grate, natural lacquer, acrylic paint, sand, rebar, wire, gypsum, thread, compact discs, wood, cement, found footwear, textiles. Dimensions variable. 


혜안폴권카잔더의 조각적 배열은 교동도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허수아비, 한국의 하수도 뚜껑, 공동경비구역(판문점)의 연석과 같은 다양한 출처로부터 기인하며 린넨에 옻칠, 사진, 파운드 오브제 등의 사용으로 물질적으로 번역된다. 그들은 비슷한/다른, 익숙한/이상한, 안/밖의 물질적 위계와 비교 분석 및 환원적 이분법에 도전하며 국가에 의해 형성된 자기와 타자 개념의 미묘한 복잡성을 숙고하도록 한다. 양면 허수아비 이미지의 배경색 코드는 유엔 블루로 알려진 #5b92e5인데, 이는 공동경비구역 외벽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작가는 북한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논에서 발견된 이 허수아비를 편집증적 경계와 고통스러운 (자기)감시의 보초로 느꼈다. 그들은 이 이미지를 휴전의 긴장을 견뎌온 분열된 국가의 내면화된 주관과 공명하는 무의식적인 암호로 제시한다.



한국문화원 전시 


<먼저 온 미래>, 2015,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HD 16:9, 10분 8초


전소정의 <먼저 온 미래>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과 남한 피아니스트 엄은경의 일련의 만남, 대화, 연습을 통해 협연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시간과 이념을 거슬러 피아노 앞에 자리한 두 피아니스트는 각각 남북한의 음악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70년의 격차를 좁히고자 과거, 특히 유년기의 기억으로 회귀한다. 두 사람은 과거의 우리가 중얼거리듯 같이 불렀을 노래들, 그러나 70년 동안 잊힌 채 서로에게 낯설어진 선율을 조심스레 결합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자 한다. 이들의 협연은 ‘용강기나리’와 ‘엄마야 누나야’의 변주선율로 시작되는 피아노 합주곡 ‘시나브로’는 우리가락의 근간이 되는 국악 기본 음계인 중임무황태의 음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돈돌아리랑’과 ‘강강술래’로 마무리되며 남북의 화합을 꾀한다.


<덩굴: 경계와 흔적>, 2023, 식물, 캔버스에 아크릴릭, 160x800 cm 


이끼바위쿠르르는 민간인 통제구역인 철원 정연리의 빈집을 가득 채운 식물을 채집하여 그것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구성한 그라피티 작품을 벽면에 선보인다. DMZ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인 동시에 식물들의 자생이 가능한 역설로 잠식된 공간이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인식하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 일종의 어떤 '틈'과 같다. 긴장의 공간임과 동시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식물은 허용된 침입자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파고드는 덩굴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이 공간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담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DSK M 02-D-05, 06, 07 (삼면화)>, 2018-2019, 북한 손자수, 면 천 위에 실크사, 중간자, 밀수, 뇌물, 긴장감, 근심, 검열, 이데올로기, 나무 프레임, 1200시간 / 1명, 각 105x151 cm / 전체 151x315 cm


2000년대 후반부터 함경아가 진행한 ‘자수 프로젝트’는 작가가 집 앞에서 우연히 발견한 북한의 선전용 ‘삐라’를 보고 알 수 없는 북한의 누군가와 예술적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고안되었다. 작가는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모든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지며 고도로 디지털화된 우리의 일상과 상반되는 폐쇄적인 북한 주민의 삶에 문을 두드리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샹들리에 시리즈는 북한 카드 섹션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이 각각의 컬러 차트를 보여주며 대규모의 선전 이미지를 보여주던 와중, 클로즈업된 텔레비전 스크린에 한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그 소년의 얼굴과 카드 섹션 이미지는 픽셀이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샹들리에 이미지와 겹쳐보였다.


<오바드 V 를 위한 연구 (1/5 스케일)>, 2019, 캐스트 스틸(DMZ 내 철거된 검문소에서 수거), 유리 구술, LED 조명, 그 외 혼합 매체, 200x70x70 cm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된 이불의 ‹오바드 V›는 타틀린 타워와 에펠탑과 같은 모더니스트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조형물이다. 작품의 철재 구조물은 남북군사합의에 의하여 2018년 철거된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에서 나온 철조망 등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작품에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깜박이는 다양한 신호들이 나타난다. 이 신호들은 모스 부호와 『국제신호서』에 기술된 방법을 차용한 신호들로써 특수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것들이기에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에게는 곧바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LED조명을 사용하여 영어로 쓰여진 “For the next 1 million years, the cycle will carry the obliquity between 22˚ 13' 44" and 24˚ 20' 50" (향후 백만 년의 주기 동안 지구 자전축의 경사는 22˚ 13' 44" 와 24˚ 20' 50" 사이에서 변동될 것이다)” 마저도 이해가 용이하지 않다.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오바드 V›는 유토피아적 또는 선구적인 야망보다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표현하고 있는 조형물로 보여진다. <오바드 Ⅴ를 위한 연구(1/5 스케일)>는 이러한 <오바드 V>를 위한 스터디 모델이다. 


<식물 평행세계>, 2023, 식물/석재(현무암), 가변크기 


식물은 비정치적 존재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절반 이상의 식물을 다르게 부르고 있다.  같은 종이지만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식물들로 하나의 정원을 만든다. 22 종의 식물로 만들어내는 집합적 풍경은 평행 세계를 이룬다. <식물 평행세계>는 2023 DMZ 오픈페스티벌, ≪DMZ 전시: 체크포인트≫(23.8.11-11.5)를 위해 파주 캠프 그리브스에 설치된 정원이다. 영상 속 북한식물명은 탈북자, 남한식물명은 작가가 낭독하였다.  


Plant Lists(South Korea, North Korea, Scientific Names)

식물리스트 (남한명, 북한명, 학명) 


* 산사나무-찔광나무. Crataegus pinnatifida

* 수수꽃다리-넓은잎정향나무. Syringa oblata Lindl. var. dilatata

* 고광나무-조선산매화. Philadelphus schrenkii 

* 귀룽나무-구름나무. Prunus padus L.

* 함박꽃나무-목란 Magnolia sieboldii

* 백당나무-접시꽃나무. Viburnum opulus L. 

* 회양목-고양나무. 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 쥐똥나무-검정알나무. Ligustrum obtusifolium

* 쑥부쟁이-푸른산국. Aster yomena

* 냉초-숨위나물. Veronicastrum sibiricum 

* 부처꽃-두렁꽃. Lythrum anceps

* 산박하-깨잎오리방풀. Isodon inflexus 

* 벼룩이울타리-긴잎모래별꽃. Eremogone juncea

* 산국-기린국화. Chrysanthemum lavanduliofolium 

* 큰꿩의다리-잔가락풀. Thalictrum kemense

* 노루오줌-노루풀. Astilbe chinensis

* 배초향-방아풀. Agastache rugosa 

* 용담-초룡담. Gentiana scabra

* 까치수염-꽃고리풀. Lysimachia barystachys

* 도깨비부채-수레부채. Rodgersia podophylla

* 마타리-맛타리. Patrinia scabiosifolia  

* 실새풀-새풀. Calamagrostis arundinacea


도움을 주신분들

손정희, 이애경, 김이경, 정은하, 김명윤 


남북한이 함께 만든 (만들지 않은) 구축물: 상상을 위한 비무장지대의 해체 – 2019, 2019, 애니메이션, 11분 23초 


김동세의 영상 ‹남북한이 함께 만든 (만들지 않은) 구축물: 상상을 위한 비무장지대의 해체›(2019)는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다섯 개의 시선으로 해체한 작업이다. 첫째, 역사의 관점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접근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본다. 둘째, 비무장지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견고한 장벽의 기능을 하는지 살펴본다. 셋째, 비무장지대가 철통같은 장벽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관통되고 남과 북이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넷째, 시야를 확대하여 비무장지대를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 맥락에서 바라보며 5,000km에 달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비밀 탈북 경로들을 추적한다. 마지막으로는 남한과 북한이 냉전 시대의 산물인 비무장지대를 함께 해체해 나가고 있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RDP 온라인 전시


2021년 코로나-19 사회격리 기간 중 제작된 본 전시는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인 비무장지대의 현실과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작가들의 상상을 가상공간에 구현해, 새로운 시각으로 DMZ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예술가들이 제시하고 상상한 DMZ에 놓인 작업을 미디어 듀오 룸톤에 의해 상상 속의 비무장지대에 녹아든다. 가상의 비무장지대가 전시의 장소이자 공간 그 자체가 작업이 된다. 이불, 임민욱, 함경아, 토비아스 레버르거, 슈퍼플렉스 등이 제안한 작업은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을 뛰어넘어 가상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온라인 전시 CREDIT: 

주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관: 리얼디엠지 프로젝트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 김선정

프로젝트 총괄: 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 아트


온라인 전시 작가 및 작품: 

- 수퍼플렉스 <하나 둘 셋 스윙!>

- 토비아스 레버르거 <듀플렉스 하우스>

- 이불 <오바드 V> 

- 함경아 <당신도 외롭습니까?>

- 임민욱 <DMZ 파수꾼>

- 룸톤


문의: 주캐나다 한국문화원 (613-233-8008/ canada@korea.kr)

        SAW Centre (613-236-6181/ info@saw-centre.com)



     











 

첨부파일